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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을 잇는 이야기 잡화점

도시에도 초급이 있을까

문지혁의 『초급 한국어』를 처음 집어 든 건 제목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한국말을 조금 더 잘하고 싶었고, 글을 잘 쓰려면 내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한국어교원 자격을 준비하던 중 『초급 한국어』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내용은 전혀 몰랐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의 이야기일까. 초급 한국어를 어떻게 가르치는 걸까. 단순한 궁금증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상하게 ‘한국어’보다 ‘초급’이라는 단어가 오래 남았다.

소설 속 문지혁은 뉴욕에서 초급 한국어를 가르친다. 학생들에게는 선생이지만 뉴욕에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계속 초급의 상태에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낯선 도시에서 공부하고, 일을 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을 만들어간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즈음에도 그곳에 계속 머물 수 있는지는 비자와 일자리에 달려 있다.

언어의 초급에는 다음 단계가 있다.

초급을 지나 중급으로, 다시 고급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이방인의 삶에도 그렇게 분명한 다음 단계가 있을까.

책을 읽으며 이방인은 어쩌면 계속 초보와 비슷한 상태에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을 한 번 더 살피고, 이미 알고 있는 규칙을 뒤늦게 배우고,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해야 하는 사람.

책의 후반부에는 문지혁이 대학원 졸업 학기에 참여한 워크숍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글을 읽은 한 소설가는 글이 너무 ‘반듯한 게 탈’이라고 말한다. 문지혁에게 그 말은 자신의 글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평가처럼 들린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다가 나름의 큰 일탈을 결심해 뉴욕까지 왔는데, 다시 ‘반듯하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는 분노를 담아 앞으로는 삐뚤어지겠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소설가는 반듯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되받아치라고 말한다.

이 장면을 읽으며 ‘초급’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했다.

처음 무언가를 배울 때 우리는 자꾸 정답을 찾는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면 어떤 표현이 맞는지 찾고,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살핀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다른 사람에게 묻게 된다.

반듯한 것이 틀렸다면 삐뚤어지면 되는 걸까.

어쩌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은 다른 정답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말할 수 있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책에는 ‘잘 지내냐’는 말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잘 지내?’
‘응, 잘 지내.’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문장이다.

하지만 정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말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때로 ‘잘 지내’라는 대답은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라기보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쉬운 문장이라고 해서 쉬운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을 진 프랑스 릴의 다리 위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초급 한국어』를 읽다가 문득 2022년 여름, 프랑스 릴에서 보낸 어느 저녁이 생각났다.

사진첩을 다시 열어보니 나는 그날 같은 장소를 여러 각도에서 찍어두었다.

다리 아래에서 다리를 바라봤다.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넜다.

조금 뒤에는 그 다리 위에 올라갔다.

프랑스 릴의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운하와 거리 풍경

다리 위에서는 운하와 거리, 집들이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테라스에 앉았다. 주황색 의자 사이로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고, 그 사이를 개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프랑스 릴의 주황색 테라스 의자와 사람들 사이를 걷는 강아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를 것 없는 저녁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개를 데리고 나왔고, 누군가는 친구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는 그 풍경을 바라보던 나도 있었다.

사진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다.

그들과의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웠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는 여전히 조금 떨어져 있었다.

아래에서 보고, 위에서 보고, 가까이에서 다시 보았다.

어쩌면 이방인의 눈은 그래서 조금 초급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더 바라보고,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이유를 궁금해한다. 현지 사람에게는 배경이 되어버린 풍경이 이방인에게는 하나의 장면이 된다.

도시에도 초급이 있을까.

길을 알고, 자주 가는 카페가 생기고, 어느 다리를 건너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게 되는 것.

그렇게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도시의 사람이 되는 걸까.

아니면 오래 살아도 여전히 낯선 사람으로 남을 수 있고, 반대로 잠시 머물러도 어떤 도시와 가까워질 수 있는 걸까.

초급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더 자연스럽게 말하고, 더 익숙하게 살아가고, 더 능숙하게 쓰는 것일까.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문장을 따라 말하는 대신 자신의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2022년 릴에서 나는 평범한 저녁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다시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날 사진에 남은 것은 릴의 풍경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 도시를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의 시선도 함께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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