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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타 슈퇼츨: 바우하우스의 유일한 여성 마이스터

직조의 여왕

바우하우스 입학과 두각

군타 슈퇼츨 (1897.03.05~1983.04.22, 독일 뮌헨) 은 1919년 바우하우스 개교와 함께 입학했다. 원래는 장식 예술, 도예를 공부했지만 1917년 계속되는 전쟁으로 그만두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간호사로 일하기를 자원한다. 뮌헨으로 돌아가 다시 공부에 몰두하고 이 시기에 슈퇼출은 바우하우스의 유리 공방과 벽화 수업에 참여하면서 교수직까지 오른다.

당시 직조 공방의 책임자였던 Georg Muche 는 공예 자체에 관심이 없었고, 직조와 다른 섬유 예술을 ‘여성의 일’로 보면서 기술 과정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시대에 기술적 측면보다는 시각적으로 보는 것이 관점의 포인트다.


그녀는 직조공으로서의 기술사 시험에 합격하고, 크레펠트의 학교에서 직물 염색 과정을 수강한 후 염색 스튜디오를 연다. 1921년 유명한 건축가인 Marcel Breuer와 협업하여 아프리카 의자를 제작하고 첫 번째 공식 바우하우스 전시회에서 그녀의 작품들은 호평을 받는다. 바우하우스 설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는 ‘예술과 기술- 새로운 통합’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한다.

유일한 여성 마이스터

1927년, 바우하우스 유일한 여성 마이스터(공방장)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직조공방을 섬유 디자인 연구소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작품은 단순 장식이 아니라 기능적이고 산업 생산이 가능한 디자인을 목표로 했으며, 이는 훗날 현대 패브릭 산업의 시초가 되었다. 그녀는 직조를 ‘여성의 일’ 이라는 함의에서 벗어나 ‘산업 디자인’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Upholstery 6 sample

학생들의 실슴 및 이론 교육을 지도하고 직조 워크샵 전체를 책임지게 되면서 밀려드는 주문량으로 바우하우스의 재정적으로 가장 큰 성과를 남긴다. 그녀는 학생들과 특히, Anni Albers는 직물과 합성섬유 특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들은 색상, 질감, 구조, 유연성 등 품질을 위해 재료를 테스트한다. 슈퇼츨 지휘하에 직조 워크샵은 바우하우스의 가장 성공적인 학부 중 하나가 되었다.

1928, 면, 실크, 린넨
나치 정권의 위기

1931년, 바우하우스 내부 정치와 남성 교수진과의 갈등, 그리고 반유대주의 정서가 겹쳐 그녀는 마이스터 자리에서 사임했다. 특히 당시 그녀가 유대인과 결혼한 사실은 정치적 압박을 키웠다. 그녀는 직조공방을 떠난 뒤에도 동료 학생들과 교류하며 디자인 실험을 이어갔다. 하지만 독일 사회 전반이 이미 권위주의와 배타주의로 기울고 있었기에 활동의 제약이 점점 심해졌다.

1933년 나치 집권 이후, 예술가와 지식인 다수가 그렇듯 슈텔츨도 독일을 떠났다. 그녀는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해 ‘슈텔츨 직물 공방’을 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산업 직물 회사들과 협업해 새로운 소재와 패턴을 개발했고, 일상생활에 스며드는 디자인을 추구했다. 또한 취리히 예술학교에서 강의하며 젊은 세대에게 직조를 단순한 수공예가 아닌 ‘공간을 구성하는 구조물’로 바라보도록 가르쳤다. 그녀는 독일로 돌아가지 않았고, 스위스에서 평생을 보내며 지역 문화와 산업 속에 깊게 뿌리내렸다.

군타 슈퇼츨
유산과 재조명

1960~70년대 작업을 이어나가면서 스위스에서 전시회에 참여하고 개인전을 열면서, 모더니즘 재평가 흐름 속에서 슈텔츨의 직물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아름다운 직물’이 아니라, 건축적 사고를 바탕으로 패브릭을 설계한 사례로 인정받았다. 현재 MoMA,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 등에 그녀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전시마다 직물의 구조와 색채 감각이 현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관 뿐만 아니라 개인 수집가들도 그녀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1983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두 딸 모니카 슈타들러와 야엘 알로니가 이어가고 있으며, 독일 뮌헨에 그녀의 이름을 딴 슈퇼츨 거리가 생긴다.

1925. Design for Double-Woven Cloth
독일 뮌헨의 슈퇼츨 거리
오늘의 디자인 속에 살아있는 그녀들

이 영향력은 단순히 ‘형태’의 계승이 아니다. 그들은 예술이 산업과 협업할 수 있는 방법, 장인 기술이 과학과 만나 혁신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의 창작이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설 수 있음을 입증했다.

2025년의 오늘, 블로그 화면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다시 적는 일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도시를 기록하듯, 디자인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남긴 구조와 색, 그리고 태도를 미래로 연결시키는 셈이다.

그리고 그 흔적을 알아보는 우리의 시선이, 그들의 영향력을 계속해서 확장시킬 것이다.

바우하우스 여성들

두 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https://www.guntastolz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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