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기능 사이, 마리안네 브란트”

마리안네 브란트(Marianne Brandt, 1893.10.01, 독일)는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금속 세공인, 디자이너로 독보적인 여성이었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 금속공방은 대부분이 남성들로 무거운 망치, 불길, 납땜과 절삭, ‘남성의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 한복판에 작고 단단한 손을 가진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철과 빛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룬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회화와 조각을 공부했으며, 1923년부터 1929년까지 바이마르와 바우하우스에서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프리랜서 아티스트로써 활동을 한다. 바우하우스는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든” 환영한다고 주장했지만 강한 성적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브란트의 노력으로 라슬로 모홀리나가기 교수는 금속 작업장에 그녀의 자리를 제안하고 학위를 취득한 유일한 여성이 된다.

여자는 금속을 못 다룬다?!
입학 초기 동료들은 그녀에게 지루하고 따분한 작업만 맡겼으며, 공방에서의 진지한 훈련은 늘 거절당하면서 보조 역할 혹은 단순한 납땜만 맡겼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늦게까지 남아서 공구를 익히고 빛의 각도와 금속의 표면 반사를 연구했다. 그 결과, 바우하우스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금속 디자인을 탄생시킨다. 또한 1928년 라슬로 모홀리나가기가 교수직을 떠나자, 1년 동안 브란트는 그를 대신해 금속 작업장을 이끌었다.

그녀가 디자인한 사물들.
차 주전자, 재떨이, 램프,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생활도구를 넘어 행태와 기능의 결합을 보여준다. 특히, 1924년 디자인한 바우하우스 티팟은 오늘날에도 대표적인 근대 디자인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군더더기 없는 기하학, 기능을 숨기지 않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과시가 아닌 사용을 위한 디자인. 손을 닿게 하는 미학이 있다.

빛의 조형은 조명
마리안네 브란트는 조명 설계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전구의 빛이 어떻게 굴절되고, 퍼지는지를 공간의 감정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특히, 팬던트 조명 시리즈는 지금도 다양한 리디자인 형태로 상용화되어 있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은 수많은 계산과 손작업의 결과이다. 그녀와 공부했던 빌헬름 바겐펠트의 회고록에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금속 작업장에는 낡은 연삭 및 연마 기계가 하나뿐이었고, 그 외에는 다른 기계 도구가 없었고 그저 임시로 만든 수동 도구만 있었습니다.

금속,여성,그리고 나치 정권
브란트의 작업은 개인적 성취를 넘어, 여성이 산업 디자인의 주체가 될 수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이 되었다. 1929년 바우하우스를 떠나 베를린에 있는 발터 그로피우스(바우하우스 설립자)의 스튜디오에서 일을 한다. 1932년까지 금속 제품 공장에서 디자인 책임자로 일했지만, 대공황으로 실직한다. 1933년 초, 독일에서 나치 정권이 시작될 무렵, 국외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 고향인 케미츠에서 살면서 작품을 제작했지만 특정 목적이나 의뢰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고립된 예술가의 삶
그녀는 1930년 후반, 디자이너로 잠시 활동을 했지만 나치 정권의 감시와 여성에 대한 직업 제한 때문에 공개적인 창작을 거의 하지 못한다. 사적인 공간에서만 드로잉과 회화 작업을 했으며 사진작가로도 기억된다.


오늘날, 그녀의 재능과 노력
사진에서 보이듯이 금속 공의 곡선과 거울 표면에 왜곡된 그녀의 얼굴과 몸은 바우하우스에서 자신과 주요 매체가 혼합된 이미지를 만든다. 당시 독일 사회에서 여성의 기술 직업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졸업 후에도 금속 기술들을 노력으로 담아내며, 독일 산업디자인계에서 다양한 제품을 제작했다. 오리지널 Tea Pot은 전부 수작업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로 인해 유사한 제품이 대량 생산된다. 복제권은 1985년 이탈리아 금속 제품 회사인 알레시에 부여되면서 1926년 재떨이 디자인도 생산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다음 4편은, 바우하우스의 직조공방 유일한 여성 책임자였던 쿤타 슈톨츨(Gunta Stölzl) 이야기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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