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골목과 대문이 속삭여주던 다정한 이야기들
서랍을 정리하다 2016년 익선동에서 직은 사진 몇 장을 펼쳐보려합니다. 이 날의 사진은 유독 ‘골목’과 ‘대문’이 가득했습니다. 좁은 길과 굳게 닫힌 문 앞에 셔터를 눌렀던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9년 늦은 저의 대답입니다.
발견 1. 관계를 만들던 골목 : 공동의 마당










골목의 ‘폭’이 주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불편함이 오히려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고, 걷는 속도를 늦추게 해 주변을 살피게 만드는 ‘다정한 설계’ 였음을 설명합니다. 각기 다양한 담장의 형태와 재질은 좁은 골목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골목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으며, 우리의 발걸음 또한 파란색으로 물들어갑니다. 2016년의 익선동은 오늘처럼 인파로 가득 찬 상업 ‘가로’가 아니라, 집집마다 내놓은 작은 화분이 어우러진 공동의 마당에 가까웠습니다. 골목은 그저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이웃의 삶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생활의 공간이었습니다.
발견 2. 표정을 간직한 대문 : 닫혀있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던 얼굴들






획일적인 아파트 현관문과 달리, 익선동의 대문들이 가진 각기 다른 ‘표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문의 색깔, 재료, 손잡이 모양, 우편함, 닳고 벗겨진 흔적 하나하나가 그 집의 역사와 그곳에 사는 사람의 개성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이 대문들은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차가운 경고가 아니라, ‘이 너머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라고 속삭이는 ‘다정한 경계’였습니다. 굳게 닫혀 있었기에, 그 안의 삶을 더 궁금해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 여전히 다정한 도시를 꿈꾸며

골목이 동네 전체의 공적인 ‘리듬’을 만들었다면, 대문들은 그 리듬 위에서 저마다의 개성을 노래하는 ‘멜로디’ 같았습니다. 그 리듬과 멜로디의 합주가 2016년 익선동의 매력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9년이 지난 지금, 그 골목은 어떤 리듬을, 대문들은 어떤 멜로디를 노래하고 있을까요? 많은 대문들이 이제는 카페와 상점의 화려한 ‘입구’가 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환영하며 활짝 열려있지만, 문 너머의 삶을 상상하게 하던 그 설렘도 함께 열려 사라진 것을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016년의 저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다정한 경계’들과 ‘느린 길’들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날의 기록을 다시 꺼내보는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지켜내야 할 도시의 ‘다정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사진첩 속, 잊고 있던 도시의 문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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